위안부 할머니 또 별세, 올들어 6명… 27명 남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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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도구라 작성일18-11-24 02:45 조회428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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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분이라도 살아계실때 진실로 사과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27분이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하점연 할머니(사진)가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40명 가운데 생존자는 27명으로 줄었다. 올해에만 6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별세했다.
경남 하동군에서 태어난 하 할머니는 15세였던 1936년 일본 오사카에 사는 친언니의 집에 조카를 돌보러 갔다가 위안부로 끌려갔다. 광복 후 부산으로 돌아온 하 할머니는 부모와 조카를 돌보면서 살았다. 마흔네 살에 결혼했지만 위안부 때 입은 피해로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다. 슬하에는 남편 소생인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서구 공항동 중앙장례식장에 차려졌다. 발인은 28일 오전 9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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